실미도 사건
안녕하세요 어디까지해봤니입니다. 오늘은 실미도 사건에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실미도는 인전광역시 중구 무의동에 딸린 무인도로, 인천국제공황이 있는 영종도 바로 앞의 잠진도 항에서 차도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대무의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실미도는 수도권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영화 <실미도>와 드라마<천국의 계단>촬영지로 잘 잘려진 서해안의 실미도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섬이다.
실미도 사건은 648부대 북파공작원 24명은 북한침투작선을 위해 창설된 특수부대 이다. 1971년 부대에서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해 인천 독밸부리 해안에 상륙한 다음,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군경과 교전을 벌이던 중,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을 했다. 그자리에서 20명은 즉사하고 4명만이 살아 남았다. 하지만 생존자 4명도 1972년 3월 10일 사형선고를 받고 급하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런 참담한 사건이 일어났으나, 정부의 얼론통제로 사건은 보도되지 못하고 30년 가까이 역사에 묻혀버렸다. 정부에서 숨기려고 했으나,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684부대를 창설한 이유는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들이 청화대를 습격하여 대통령을 시해할 목적으로 침투하였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30명이 사살되었고, 김신조는 생포되었다. 이사건의 계기로 정부는 1968년 4월 1일 중안 정보부의 지시로 648특공대, 오소리공작대를 창설했다. 북한에 대한 보복차원에서 평양의 주석궁을 숩격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31명의 청년을 모아, 이들을 이곳 외딴섬 실미도에 격리 수용하면서 3년 4개월간의 지옥훈련을 시켰다.
혹독한 훈련과 열악한 환경, 보수 등이 원인으로 북한침투 훈련은 다 끝냈지만,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에 동서 내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 침투명령을 받지 못하고 3년 4개월을 기다리고 있어야만했다. 이러한 정세 속에 북파공장원은 정권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정부는 이 공작원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인간병기인 공작원들에게 기간병들이 살해되고, 실미도 사건이 터진 것이다. 공작원 24명은 1971년 8월 23일 기간병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면서 하게 되었다, 당시에 동원된 기간병 중에 단 6명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고 그들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으며 묻혀질뻔했던 실미도 사건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당신의 훈련장에는 공장원들의 최종 폭파목표인 김일성 주석궁과 축소된 평양의 시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비극의 현장을 보기위해 찾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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